4. 역할, 책임, 협력

객체의 세계에서 협력이라는 문맥이 객체의 행동 방식을 결정한다. 객체지향자에 갓 입문한 사람들의 가장 흔한 실수는 협력이라는 문맥을 고려하지 않은 채 객체가 가져야 할 상태와 행동부터 고민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개별 객체가 아니라 객체들 사이에 이뤄지는 협력이다. 객체지향 설계의 전체적인 품질을 결정하는 것은 개별 객체의 품질이 아니라 여러 객체들이 모여 이뤄내는 협력의 품질이다. 협력이 자리를 잡으면 저절로 객체의 행동이 드러나고 뒤이어 적절한 객체의 상태가 결정된다.

훌륭한 객체지향 설계란 겉모습은 아름답지만 협력자들을 무시하는 오만한 객체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조화를 이루며 적극적으로 상호 작용하는 협력적인 객체를 창조하는 것이다. 비록 그 객체를 따로 떼어놓고 봤을 때는 겉모습이 다소 기묘하고 비합리적이더라도 말이다.

이번 장에서는 먼저 객체지향 설계의 품질을 결정하는 역할, 책임, 협력의 개념에 관해 살펴볼 것이다. 그 후에 협력이 어떤 식으로 객체의 외양과 특성을 결정하는지 설명하겠다.

협력

요청에 응답하며 협력하는 사람들

협력의 본질은 요청과 응답으로 연결되는 사람들의 네트워크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직면하게 되는 문제는 혼자만의 힘으로는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에 해결 과정에 여러 사람이 참여하게 된다. 이 과정 속에서 요청과 응답의 연쇄적인 흐름이 발생한다.

협력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할 때 시작된다. 요청을 받은 사람은 일을 처리한 후 요청한 사람에게 필요한 지식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요청에 응답한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요청을 받은 사람 역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처리하던 중에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결과적으로 협력은 다수의 요청과 응답으로 구성되며 전체적으로 협력은 다수의 연쇄적인 요청과 응답의 흐름으로 구성된다.

누가 파이를 훔쳤지?

훌륭한 객체를 설계하기 위해서는 먼저 협력이라는 단어 속에 내포된 다양한 특성을 두루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앨리스 이야기

 

앨리스의 이야기에서 많은 등장인물들이 법정에 모여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하트 잭에게 죄가 있는지 판단하고 죄가 있다면 어떤 형량을 부과할지 결정하기 위해서이다.

이번에는 객체지향 패러다임이라는 렌즈를 끼고 재판 장면을 바라보자. 객체지향의 세계는 동일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협력하는 객체들의 공동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즉 이야기에 등장하는 객체들은 하트 잭의 재판이라는 동일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협력하고 있는 것이다.

재판 속의 협력

모든 협력이 그런 것 처럼 하트 잭의 재판 과정 역시 재판에 참여하는 많은 사람들이 요청하고 응답하는 과정 속에서 이뤄진다.

앨리스의 이야기에서 왕이 모자 장수로 부터 증언을 듣는 과정을 요청과 응답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보자.

  • 누군가가 왕에게 재판을 요청함으로써 재판이 시작된다.
  • 왕이 하얀 토끼에게 증인을 부를 것을 요청한다.
  • 왕의 요청을 받은 토끼는 모자 장수에게 증인석으로 입장할 것을 요청한다.
  • 모자 장수는 증인석에 입장함으로써 토끼의 요청에 응답한다.
  • 모자 장수의 입장은 왕이 토끼에게 요청했던 증인 호출에 대한 응답이기도 하다.
  • 이제 왕은 모자 장수에게 증언할 것을 요청한다.
  • 모자 장수는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을 증언함으로써 왕의 요청에 응답한다.

이제 협력 안의 요청과 응답에 초점을 맞춰 보자. 결국 어떤 등장인물들이 특정한 요청을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는 그 요청에 대해 적절한 방식으로 응답하는 데 필요한 지식과 행동 방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청과 응답은 협력에 참여하는 객체가 수행할 책임을 정의한다.

책임

객체지향의 세계에서는 어떤 객체가 어떤 요청에 대해 대답해 줄 수 있거나, 적절한 행동을 할 의무가 있는 경우 해당 객체가 책임을 가진다고 말한다. 어떤 대상에 대한 요청은 그 대상이 요청을 처리할 책임이 있음을 암시한다.

책임은 객체지향 설계의 가장 중요한 재료다.

객체지향 개발에서 가장 중요한 능력은 책임을 능숙하게 소프트웨어 객체에 할당하는 것

크레이그 라만(Craig Larman)

책임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객체와 책임이 제자리를 잡은 후에 고려해도 늦지 않다. 객체와 책임이 이리저리 부유하는 상황에서 성급하게 구현에 뛰어드는 것은 변경에 취약하고 다양한 협력에 참여할 수 없는 비자율적인 객체를 낳게 된다.

책임의 분류

책임은 객체에 의해 정의되는 응집도 있는 행위의 집합으로, 객체가 알아야 하는 정보와 객체가 수행할 수 있는 행위에 대해 개략적으로 서술한 문장이다. 즉, 객체의 책임은 ‘객체가 무엇을 알고 있는가(knowing)’‘무엇을 할 수 있는가(doing)’로 구성된다.

크레이그 라만은 이러한 분류 체계에 따라 객체의 책임을 크게 ‘하는 것’과 ‘아는 것’의 두 가지 범주로 자세히 분류하고 있다.

  • 하는 것
    • 객체를 생성하거나 계산을 하는 등의 스스로 하는 것
    • 다른 객체의 행동을 시작시키는 것
    • 다른 객체의 활동을 제어하고 조절하는 것
  • 아는 것
    • 개인적인 정보에 관해 아는 것
    • 관련된 객체에 관해 아는 것
    • 자신이 유도하거나 계산할 수 있는 것에 관해 아는 것

그림의 협력을 자세히 보면 그 안에서 두 가지 범주의 책임을 모두 발견할 수 있다.

  • 왕은 재판에 참여하는 다른 객체들의 활동을 제어하고 조율하고 있다. 따라서 왕은 하는 것과 관련된 책임을 수행한다.
  • 하얀 토끼는 목격자가 모자장수라는 사실을 아는 것과 모자장수가 증인석에 입장하도록 요구 하는 것 두가지 종류 책임을 모두 수행한다.
  • 모자장수의 경우 스스로 증인석에 입장 하는 것과, 자신이 증언해야하는 사실을 아는 것 두가지 종류 책임을 모두 수행한다.

책임은 객체지향 설계의 품질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객체지향 설계의 예술은 적절한 객체에게 적절한 책임을 할당하는 데 있다.

객체의 책임을 이야기 할때는 일반적으로 외부에서 접근 가능한 공용 서비스의 관점에서 이야기 한다. 즉, 책임은 객체의 외부에 제공해 줄 수 있는 정보(아는 것)와 외부에 제공해 줄 수 있는 서비스(하는 것)의 목록이다. 따라서 책임은 객체의 공용 인터페이스를 구성한다.

책임과 메시지

협력 안에서 객체는 다른 객체의 요청으로만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수행한다.

결국 한 객체가 다른 객체에게 전송한 요청은 그 요청을 수신한 객체의 책임이 수행되게 한다. 이처럼 객체가 다른 객체에게 주어진 책임을 수행하도록 요청을 보내는 것을 메시지 전송이라고 한다. 따라서 두 객체간의 협력은 메시지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때 메시지를 전송함으로써 협력을 요청하는 객체를 송신자, 메시지를 받아 요청을 처리하는 객체를 수신자라 한다.

책임이 협력이라는 문맥 속에서 요청을 수신하는 한 쪽 객체 관점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 지를 나열하는 것이라면, 메시지는 협력에 참여하는 두 객체 사이의 관계를 강조한 것이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책임과 메시지의 수준이 같지는 않다는 점이다. 책임은 객체가 협력에 참여하기 위해 수행해야 하는 행위를 상위 수준에서 개략적으로 서술한 것이다. 책임을 결정한 후 실제로 협력을 정제하면서 이를 메시지로 변환할 때는 하나의 책임이 여러 메시지로 분할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객체지향 설계는 협력에 참여하기 위해 어떤 객체가 어떤 책임을 수행해야 하고 어떤 객체로부터 메시지를 수신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으로 부터 시작된다. 어떤 클래스가 필요하고 어떤 메서드를 포함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책임과 메시지에 대한 대략적인 윤곽을 잡은 후 시작해도 늦지않다.

역할

책임의 집합이 의미하는 것

협력의 관점에서 어떤 객체가 어떤 책임의 집합을 수행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보자 이야기에서 미루어보면 재판이라는 협력에 참여하기 위해 모자 장수는 ‘증인’이라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고 왕은 ‘판사’라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결론적으로 어떤 객체가 수행하는 책임의 집합은 객체가 협력 안에서 수행하는 역할을 암시한다. 이것이 중요한가? 왕은 왕일 뿐이고 모자장수는 모자장수일 뿐이지 않은가? 굳이 왕을 판사라고 부르고 모자장수를 증인이라고 불러서 상황을 복잡하게 만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역할이 재사용 가능하고 유연한 객체지향 설계를 낳는 매우 중요한 구성요소이기 때문이다. 앨리스의 다음 이야기를 살펴본후 역할의 개념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앨리스 이야기

 

이전 모자장수가 증언하는 과정과 연이어 요리사와 앨리스가 증언하는 과정을 비교하면 차이점과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가장 두드러진 차이점은 모자장수 대신 요리사와 앨리스가 재판의 증인으로 출석했다는 점이다. 또 다른 차이점은 판사로서 왕이 여왕에게 자신의 일을 위임 했다는 점이다.

다시 모자장수 이야기에서 협력 과정을 나열 해보자

  • 누군가가 에게 재판을 요청함으로써 재판이 시작된다.
  • 이 하얀 토끼에게 증인을 부를 것을 요청한다.
  • 의 요청을 받은 토끼는 모자장수에게 증인석으로 입장할 것을 요청한다.
  • 모자 장수는 증인석에 입장함으로써 토끼의 요청에 응답한다.
  • 모자 장수의 입장은 연쇄적으로 토끼에 대한 의 요청에 대한 응답이기도 하다.
  • 이제 은 모자 장수에게 증언할 것을 요청한다.
  • 모자 장수는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을 증언함으로써 의 요청에 응답한다.

요리사가 증언을 하는 경우에도 재판 과정은 동일하다, 단지 인물이 바뀌었을 뿐이다.

  • 누군가가 에게 재판을 요청함으로써 재판이 시작된다.
  • 이 하얀 토끼에게 증인을 부를 것을 요청한다.
  • 의 요청을 받은 토끼는 요리사에게 증인석으로 입장할 것을 요청한다.
  • 요리사는 증인석에 입장함으로써 토끼의 요청에 응답한다.
  • 요리사의 입장은 연쇄적으로 토끼에 대한 의 요청에 대한 응답이기도 하다.
  • 이제 은 요리사에게 증언할 것을 요청한다.
  • 요리사는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을 증언함으로써 의 요청에 응답한다.

앨리스가 증언을 하는 장면에 이르면 왕은 여왕으로, 증인으로 출석한 모자 장수와 요리사의 자리는 앨리스로 바뀐다.

  • 누군가가 여왕에게 재판을 요청함으로써 재판이 시작된다.
  • 여왕이 하얀 토끼에게 증인을 부를 것을 요청한다.
  • 여왕의 요청을 받은 토끼는 앨리스에게 증인석으로 입장할 것을 요청한다.
  • 앨리스는 증인석에 입장함으로써 토끼의 요청에 응답한다.
  • 앨리스의 입장은 연쇄적으로 토끼에 대한 여왕의 요청에 대한 응답이기도 하다.
  • 이제 여왕은 앨리스에게 증언할 것을 요청한다.
  • 앨리스는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을 증언함으로써 여왕의 요청에 응답한다.

재판이 이뤄지는 세가지 과정은 모두 완벽하게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차이점은 협력마다. 다른 대상이 협력에 참여한다는 점이다. 이 세 개의 협력을 별도로 관리하고 유지해야하는 가? 만약 재판 과정이 바뀐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세 개의 협력 과정을 일일이 쫓아다니며 수정해야 할까?

역할이 답이다.

이제 핵심으로 들어가자. 우리에겐 3개의 협력이 주어져있다. 문제는 협력에 참여하는 등장인물을 제외한 나머지 과정이 너무 유사해서 하나의 협력으로 다루고 싶다는 것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재판에서 왕과 여왕은 ‘판사’의 역할을 수행한다. 모자장수, 요리사, 앨리스는 ‘증인’의 역할을 수행한다. 따라서 이러한 역할(role) 을 사용하면 3가지 협력을 모두 포괄할 수 있는 하나의 협력으로 추상화 할 수 있다.

  • 누군가가 판사에게 재판을 요청함으로써 재판이 시작된다.
  • 판사는 하얀 토끼에게 증인을 부를 것을 요청한다.
  • 판사의 요청을 받은 토끼는 증인에게 증인석으로 입장할 것을 요청한다.
  • 증인은 증인석에 입장함으로써 토끼의 요청에 응답한다.
  • 증인의 입장은 연쇄적으로 토끼에 대한 판사의 요청에 대한 응답이기도 하다.
  • 이제 판사은 증인에게 증언할 것을 요청한다.
  • 증인은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을 증언함으로써 판사의 요청에 응답한다.

역할은 협력 내에서 다른 객체로 대체할 수 있음을 나타내는 일종의 표식이다. 협력 안에서 역할은 “이 자리는 해당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어떤 객체라도 대신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제 협력에 참여할 수 있는 객체를 굳이 특정 인물로 제한할 필요가 없다. 역할을 이용해 협력을 추상화 했기 때문에 ‘판사’나 ‘증인’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어떤 객체라도 협력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나 해당 역할을 대체할 수 있을까? 물론 아니다. 역할을 대체하기 위해서는 각 역할이 수신할 수 있는 메시지를 동일한 방식으로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역할을 대체할 수 있는 객체는 동일한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는 객체로 한정된다.

메시지가 책임을 의미한다고 했던 것을 기억하라, 결국 동일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은 해당 객체들이 협력 내에서 동일한 책임의 집합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요약하자면 역할의 개념을 사용하면 유사한 협력을 추상화 해서 인지과부화를 줄일 수 있다. 또한 다양한 객체들이 협력에 참여 가능하기 때문에 협력이 좀더 유연해지며 다양한 객체들이 동일한 협력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재사용성이 높아진다. 역할은 객체지향 설계의 단순성(simplicity), 유연성(flexibility), 재사용성(reusability)을 뒷받침 하는 핵심 개념이다.

협력의 추상화

역할의 가장 큰 가치는 하나의 협력 안에 여러 종류의 객체가 참여할 수 있게 함으로써 협력을 추상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협력의 추상화는 설계자가 다뤄야 하는 협력의 개수를 줄이는 동시에 구체적인 객체를 추상적인 역할로 대체함으로써 협력의 양상을 단순화 한다. 결과적으로 애플리케이션의 설계를 이해하고 기억하기 쉬워진다.

따라서 역할을 이용하면 협력을 추상화함으로써 단순화 할 수 있다. 구체적인 객체로 추상적인 역할을 대체해서 동일한 구조의 협력을 다양한 문맥에서 재사용할 수 있는 능력은 과거 전통적인 패러다임과 구분되는 객체지향만이 힘이다. 그리고 그 힘은 근본적으로 역할의 대체 가능성에서 비롯된다.

대체 가능성

역할은 협력 안에서 구체적인 객체로 대체될 수 있는 추상적인 협력자다. 따라서 본질적으로 역할은 다른 객체에 의해 대체 가능함을 의미한다.

객체가 역할을 대체하기 위해서는 행동이 호환돼야 한다는 점에서 주목하라. 결국 객체는 협력 안에서 역할이 수행할 수 잇는 행동을 그대로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객체지향의 용어를 빌려 설명하면 객체가 역할을 대체 가능하기 위해서는 협력 안에서 역할이 수행하는 모든 책임을 동일하게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객체가 역할에 주어진 책임 이외에 다른 책임을 수행할 수도 잇다는 사실에 주목하라. 앨리스는 잠시만 증인의 역할을 할 뿐 이야기 내내 주인공으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결국 객체는 역할이 암시하는 책임보다 더 많은 책임을 가질 수 있다. 따라서 대부분의 경우에 객체의 타입과 역할 사이에는 일반화/특수화 관계가 성립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역할이 협력을 추상적으로 만들 수 있는 이유는 역할 자체가 객체의 추상화이기 때문이다.

요약하자면 역할의 대체 가능성은 행위 호환성을 의미하고, 행위 호환성은 동일한 책임의 수행을 의미한다.

객체의 모양을 결정하는 협력

흔한 오류

많은 사람들은 시스템에 필요한 데이터를 저장하기 위해 객체가 존재한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데이터는 단지 객체가 행위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재료일 뿐이다. 객체가 존재하는 이유는 행위를 수행하며 협력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따라서 실제로 중요한 것은 객체의 행동, 즉 책임이다.

두 번째 선입견은 객체지향이 클래스와 클래스 간의 관계를 표현하는 시스템의 정적인 측면에 중점을 둔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정적인 클래스가 아니라 협력에 참여하는 동적인 객체이며, 클래스는 단지 시스템에 필요한 객체를 표현하고 생성하기 위해 프로그래밍 언어가 제공하는 구현 메커니즘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객체지향 입문자들이 데이터나 클래스를 중심으로 애플리케이션을 설계하는 이유는 협력이라는 문맥을 고려하지 않고 각 객체를 독립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왕’의 인스턴스를 모델링할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왕관을 쓰고 멋진 수염을 기른 채. 근엄한 표정으로 왕좌에 앉아 있는 왕의 모습부터 떠올릴 것이다.

처음에는 전형적인 왕의 모습을 빌려 소프트웨어 객체를 창조하는 것이 합리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실제로 동작하는 애플리케이션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왕이 참여하는 협력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왕의 겉모습이 아니다. 앨리스 이야기에서 왕이 중요한 이유는 재판이라는 협력에 ‘판사’의 역할로 참여해서 죄인의 죄를 판결하는 책임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협력을 따라 흐르는 객체의 책임

올바른 객체를 설계하기 위해서는 먼저 견고하고 깔끔한 협력을 설계해야 한다. 협력을 설계한다는 것은 설계에 참여하는 객체들이 주고받을 요청과 응답의 흐름을 결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단 객체에게 책임을 할당하고 나면 책임은 객체가 외부에 제공하게 될 행동이 된다. 협력이라는 문맥에서 객체가 수행하게 될. 적절한 책임, 즉 행동을 결정한 후에 그 행동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데이터를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객체가 협력에 참여하기 위해 필요한 데이터와 행동이 어느 정도 결정된 후에 클래스의 구현 방법을 결정해야 한다.

앨리스의 이야기에서 누군가는 재판을 진행해야 하고 누군가는 증인을 증인석으로 불러야 하며 누군가는 증언해야 한다. 이처럼 협력을 구성하는 데 필요한 일련의 책임을 먼저 고안하고 나면 그 책임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객체를 선택하게 된다.

그렇게 할당된 책임은 해당 객체들이 외부에 제공하게 될 행동을 정의하게 된다. 이제 행동이 결정됐으니 각. 객체가 필요로 하는 데이터를 정의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데이터와 행동이 결정된 후에야 객체를 구현하는 클래스를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객체의 행위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서는 협력이라는 실행 문맥 안에서 책임을 분배해야 한다. 각 객체의 상태와 행위에 고민하기 전에 그 객체가 참여할 문맥인 협력을 정의하라. 객체지향 시스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충분히 자율적인 동시에 충분히 협력적인 객체를 창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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